카테고리 없음2009. 1. 11. 14:20

내 생각에, 인간이라는 동물의 비극은 비정상적이게 긴 수명에서부터 시작한다. 만약 당신이 원시인처럼 ‘동물인 인간’으로서 산다면 수명이 얼마나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사람들마다 다르게 말하겠지만 난 보통 30~35 정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 또한 잘 살았을 경우의 이야기고 아마 그전에 경쟁과 싸움, 사고로 인해 먼저 죽을 가능성이 많지만 말이다.


생각해보자 , 만약 당신이 30세까지 산다고 가정한다면


당신은 아마 공부를 하지 않을 것이다. 공부 자체가 의미가 없다. 30세가 당신의 수명의 끝이라면 말이다. 그러하다면 학문 또한 발달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냥 원시인처럼, 나이 많은 사람의 경험이 더 중요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재밌는 얘기를 한다면, 인간이 어릴 때 20대까지는 자신이 아마 30대에 죽을 걸로 몸은 설계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20대가 30세의 수명으로 친다면 전혀 어린 나이가 아니다. 오히려 좀 더 늙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튼, 우리의 여러가지 모든 것들은, 동물적으로 35세 정도로 수명이 정해져 있어서, 공부하는 것을 싫어하고 왜냐하면 일찍 죽을걸 몸이 (본능적으로 알기에) 공부를 싫어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라면 본능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이러한 인간의 본능을 인간에게서 지우는 것이 인간의 이성이고 인간이 동물과 구별된다는 점에서, 그리고 또 공부를 싫어하고 30세에 죽을 것처럼 젊을 때 놀고 먹는 사람들은 그렇게 행동하면서도 사실 자신은 30세에 죽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 또한 사람은 70.80세 정도 인간이 살 수 있다고 사회적으로 경험된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여기서 모순이 발생한다. 왜 너희들은 동물적으로 비이성적으로 살면서(30세에 죽을것처럼) 왜 기대하기는 70.80세 까지 살려고 생각하는가? 이것은 억지이다.  그래서 인간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동물로서의 인간과 동물을 넘어선 이성적 존재로서의 인간으로 나눌 수 있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얘기가 개미와 베짱이다. 이 동화의 교훈은 정말 인간세계의 진실을 말하고 있다. 개미와 베짱이 사실은 그 모두 의인화된 동물로서 , 모두 인간의 모습을 말한다. 개미, 베짱이 모두 둘 다 의인화되었기 때문에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고 또 두 가지 다른 생물로 나온 것은 같은 인간일지라도 두 가지 종류의 인간이 이세상에 존재한다고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베짱이는 동물로서의 인간이라 할 수 있고, 개미는 동물을 넘어선 이성적 존재로서의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는 너무 진실하다 못해 잔혹하다고도 말할 수 있다. 베짱이는 여름 동안 노래만 부르며 놀지만(인간이 술,담배,마약,섹스에 탐닉하듯이), 개미는 그 와중에서도 열심히 일한다(인간의 본능을 넘는 일, 공부, 자기계발, 양육 등 인간이 기피하는 일) , 인간의 동물적 수명을 뛰어넘는 삶을 바라보는 자(개미)와 동물적 수명에 충실한 자(베짱이), 이 두 가지가 세상에 있다.


마시멜로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가? 결국 참고 마시멜로를 안 먹은 자가 승리한다는 그러한 내용의 이야기이다. 다른 사람이 그 마시멜로를 당장 먹고 싶은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그것을 먹어버리고 결국엔 그러한 유혹을 이긴 자가 승리한다.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당장 위의 베짱이처럼 마시멜로를 먹으면 정말 행복할 것이다. 열심히 일하는 개미가 여름에 노는 베짱이를 보면 어떠한 생각이 들겠는가? 정말 짜증나고 부러울 것이다. 심지어 이러한 생각까지 들것 같다. 나중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내가, 지금 현재 저렇게 즐기는 베짱이보다 괴로운 것을 스스로 자처하는 것이 어쩌면 내가 바보인 것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도 잠시, 겨울이 곧 찾아오고 개미는 일한 봉상을 받게 되고 베짱이는 개미의 집에 찾아오게 된다.


물론 책에선 개미가 착해서, 베짱이에게 먹을 것도 주고 잘 대해주지만, 이것은 언제까지나 동화일 뿐 현실적으로 생각해본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 인가? 정말 베짱이한테 먹을 것도 잘 주고 잘 대해 줄 것 인가? 아니다. 아닌 것이 아니라 당신은 잘 대해줘야 한다. 베짱이에게는 이미 선택권이 없다. 그렇다고 같은 생물인 베짱이에게 겨울에 나가서 얼어 죽으라고 할 수는 없는 상황이기에 개미는 어쩔 수 없이 베짱이를 도와줘야 한다.(인도적 차원에서, 같은 생물로서말이다.) 하지만, 도와준다고는 해도 개미는 생각 할 것이다. 아마 개미는 베짱이를 노예화할 것이다. 자신이 여름동안 했던 그 이상의 일을 베짱이에게 시킬 것이다. 물론 겨울을 나게 해주기는 해도 말이다. 또한 베짱이도 그것을 거부 할 수 없을 것이다.


이걸 그대로 사회로 옮기면 똑같다고 보면 된다.


여기서 잠깐 정치적 지위를 상 중 하로 나누고 또 그 ‘상’, ‘중’ , ‘하’를 상상 상중 상하 중상 중중 중하 하상 하중 하하 이렇게 나눈 정치적 지위에 대해서 알아야 할 듯 싶다.  먼저 정치적 지위에서 하하층은 농민,어민 같은 1차적 생산물을 만드는 데에 종사하는 사람들이고, 하중층은 제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예를 든다면,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말한다(위험한 공장에서 근로하는 외국인 노동자가 하는 일들이 대부분 이러한 일들이다) 하상층은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모든 서비스가 아니라 단순 서비스, 서빙, 주방장, 점원, 이발사 등 이러한 사람들이고 중하층은 자영업자, 슈퍼주인이나 가게주인, 식당주인 등 자신의 사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중중층은 회사원, 샐러리맨과 같은 회사나 단체로부터 급여를 받는 임노동자 같은 직업을 말한다. 중상층은 전문가로서, 여기서 말하는 전문가란 의사, 변호사, 와 같은 전문직을 말한다. 상하층은 회사 소유자, 회사오너 를 부르는 말이고, 상중층은 전문 경영자 ceo 를 뜻한다. 상상층은, 정치인, 대통령, 국회의원, 장관, 대법관, 검찰청장 등을 말한다.


여기서 과거의 노예와 귀족을 기준으로 나눈다면, 중중이하로는 노예층, 중상이상 부터는 귀족층이라고 말할 수 있을것이다. 위의 개미와 베짱이 중에서 베짱이 계급을 노예층이라고 말할 수 있고, 중상층이상부터는 귀족층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티비 드라마를 잘 본다면 쉽게 알아 차릴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는 우리보다 대부분 잘사는 사람들이 자주나 오는 데 그들의 대부분은 귀족의 중상층인 전문가가 등장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평범하다면 회사원이 나오겠고, 그들은 중중층으로 노예지만 좀 더 자유로운 노예일 뿐인 것이다. 여기서 노예와 귀족을 구분하는 것이 있다면 경제적 자유라고 말할 수 있겠다.   


예전에 [사회적 지위가 수명을 결정한다]라는 책을 잠깐 본적이 있는데(읽다 재미없어서 그만뒀지만…). 그 책이 말하는 바가 이런 것 같다.


예전 원시사회에서는 사회적 지위가 원숭이 사회처럼 치고 박고 그런 시대였다면, 이젠 그 사회적 지위는인간의 수명이 70 80에 가까워져 있는 이러한 시기에는, 학력, 즉 얼마나 공부를 했고 아느냐가 남은 인생을 사는 데에 있어 중요한 것이다. 물론 꼭 학력이 많다고 사회적 지위가 많다고 말하기는 좀 어폐가 않아 있지만, 고졸과 대졸은 앞으로의 삶에 있어, 이미 어느 정도 얼마나 더 살지를 결정 한거나 마찬가지라고 본다. 30세에 죽을거면, 난 차라리 대학교 아니 고등학교 또한 다니지 않을 것이다. 더 나은 학력은 사치가 아니라 낭비라고 밖에 볼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의 수명이 30세 정도라면 말이다. 더 오래 살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더 배우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깐 학력이 높은(사회적지위가높은)사람들은 오래 살게 된다. 어쩌면 당연할 일이다. 거기에 반해 더 많이 안배우려고 노력하는(베짱이와 같은)사람들은 , 단호하게 말하면 죽어야 한다. 아니면 노예로서 미래를 살아야만 한다. 

사람의 인생을 동물적인 인생을 사는 30대까지의 삶과, 그 이후의 삶으로 두 가지로 나눌 때 30대까지 동물적 인생(베짱이처럼) 을 살았던 사람들은 30대 이후의 동물적인 인간으로서의 삶의 한계를 넘는 시간에서 노예(중중층이하)로 살 것이고-베짱이가 겨울에 얼어 죽지 않고 살긴 살았지만 실질적으로 산다 해도 개미의 집에서 노예의 삶을 살아야 한다, 왜냐면 그 전에 겨울이란 시간에 대해서 대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말이다. 그리고 베짱이에겐 선택이 없다. 그렇지 않으면 추운 겨울에 죽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대부분의 생물들은 겨울에 죽는다. 아무것도 없기때문이다. 어떻게 말하면 겨울에 죽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동물이 아니라 인간이기에, 여기서 말하는 인간이란, 동물을 넘어선 인간이기에, 살아야만 한다. 그리고 또 현실에서 개미들은 베짱이를 도와주지 않는다. 그럴 수 없다. 그래서 이 동화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다. 개미 , 베짱이 모두 사람이기에 사람을 겨울에 죽도록 놓아 둘 순 없다. 너무 낭비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노예적인 삶이라도 베짱이를 살게 만드는 것이 서로 좋을 것이다.

그래서 동물적인 인생을 사는 사람들(베짱이)은 일찍 죽어야만 한다. 하지만 개미 같은 사람들은 그러한 사람들을 죽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개미같은 사람들의 힘으로 죽지는 않지만, 노예로서 남은 일생을 살아야 한다. 그 노예로서의 인생이란 경제적 자유가 없는 농민, 공장근로자, 단순서비스인 점원, 자신의 가게를 가지고 일하는 자영업자, 회사에서 받는 돈으로 사는 회사원으로서 사는 것을 말한다. 듣고 보니, 이상하지 않은가? 자신의 주위를 둘러보고 자신을 한번 봐보라. 너무 노예(베짱이)가 많지 않은가? 그렇다. 그리고 또한 그들은 자신들이 노예라는 것을 모른다. 자신들이 베짱이처럼(동물적인 삶) 살았던 것 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그저 모두 많은 다른 노예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은 보통 일반 사람들처럼 살았을 뿐 평범하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한 사람들이 매우 많다.  매우 많기에 그런 사람들을 거울 삼아 봐서 자신이 노예라는 것을 모르고 또 베짱이처럼 놀고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사실 또한 모르는 것이다. 또 매우 많기에 또 그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 자유를 누릴 수 없는 것이고 잘 살 수 없는 것이다. 자원은 희소하지만 그 많은 대중이 다 잘 순 없다. 그렇지만 그러면서도 그들은 잘 살길 바란다. 이것이 모순이다. 30대에 죽을거처럼 살면서 기대하기는 70 80 까지 살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바보인 것이다. 오히려 노예가 아닌 사람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의사, 변호사, 회사 사장, 회사 경영자, 정치인, 국회의원 말이다.


이 얘기는 –사실 너무 길다- 자세히 하자면 말이다. 앞으로 많은 내 글을 읽어야만 이해할 수 있는 글이기에, 오늘은 이쯤하고, 정치적 지위, 경제적 지위, 종합소득세, 한국직업분류, 식민지와 제국으로서의 세계를 이해해야만 글을 이해할 수 있을만한 내용이다. 이러한 내용은 차차 앞으로 쓰게 될 것이다. 대부분 당연히 느껴지는 것들이지만,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외면한다. 그것이 바로 무지에 대한 열정이다. 알고 싶지 않은 것이다. 알고 싶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그것이 삶이다.

Posted by 무지의열정
카테고리 없음2009. 1. 11. 11:49

문학이라는 학문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영화나 드라마, 소설, 등등, 사실 내가 말하는 이러한 내용들을 이해하려면, 내가 이전에 생각했던 많은 것들을 사전에 알고 있어야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단 내 스스로 문학이 왜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일단 문학은 허구지만 현실에 영향력을 끼치고, 또한 그 허구를 인간스스로가 창조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떠한 인물인지 어떻게 살아갈지, 그 모든 것이 작가의 손에서 창조된다.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는 말처럼, 작가 또한 새로운 세계에 관해 쓸 수 있고 또 능력이 된다면, 자신이 만든 문학을 현실로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문학이라는 학문은 개개인을 자신의 생각대로 신이 인간을 창조하듯이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할 수 있는 학문이기에 문학을 한다는 것은 신처럼 내맘대로 내가 만든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라는 것이다. 그래서 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본다면 자신이 만든 작품에서 자신이 하나의 신이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영화나 티비 드라마나 베스트셀러의 소설들은 사람들이 그만큼 많이 접하는 사실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받아들이게 만들고 현실을 자신이 만든 세계에 맞게 만들어 간다는 점에서 지배자의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Posted by 무지의열정